< ‘상처받은 내면아이’ 만나기 >

 박영미  <수련수퍼바이저 2년차>

  8월 중순에 접어드니 어느새 끝나가는 여름방학을 더 붙잡고 싶은 아쉬운 마음이 한가득하다.

방학이다보니 여유롭기도 하고 마음이 느슨해짐에 어쩔 수 없지만, 학기중에 바쁘다는 핑계로미루고 아껴두었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여름방학을 나름 시원하게 보낸다.

요즘 드라마는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불리우는 유익하고 좋은 드라마들이 많이 있어 그 중에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드라마 ‘마더’는 방영된지 5년이나 지났지만 아동학대와 같은 사회문제와 많은 상징과 은유, 주옥같은 대사들을 담고 있어 생각할거리등을 제공한다.

일본 드라마가 원작으로 한 대학의 조류학 연구실에서 철새를 연구하는 연구원 수진은 아이슬란드 조류학센터로 떠날 예정이었으나 연구실이 폐쇄되어 인근 초등학교에서 임시교사로 근무하면서 혜나를 만나게 된다. 혜나는 엄마와 동거남으로부터의 신체적· 정서적 학대로 인해 영양실조와 몸에 상처가 있고, 전단지를 보며 한글을 공부하면서 거리를 헤맨다.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날 엄마의 동거남의 폭력으로 두려워하는 혜나를 엄마는 검정 쓰레기봉투에 넣어 집 밖에 버린다. 그런 혜나를 수진이 발견하고 혜나와 함께 멀리 도망가면서 학대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주인공 수진은 어린시절 아버지의 폭력과 학대가 있었고, 아버지를 살해한 엄마가 감옥에 가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떨어지게 된다. 이후 수진은 보육원에서 지내다가 입양되어 성장하게 된다. 이 드라마에는 다양한 엄마들이 등장한다. 수진의 친엄마는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해 남편을 살해하고 살인자의 아이라는 소리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아 수진을 고아원에 버린 후 멀리서 지켜본다. 수진을 공개입양한 유명 여배우인 입양모는 수진에게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가족을 제공해준다. 혜나의 엄마는 남자친구로부터 버림받아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는 미혼모가 되었지만 아이를 학대한다.

수진은 엄마가 자신을 버린 것에 대한 상처로 자신에 대해 왜곡된 생각과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겉으로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여 외롭고 경직되어 있으며 다소 차갑게 보여진다.

이 드라마의 아이러니는 자신을 버린 엄마가 싫어서 자신은 엄마가 되지 않을거라고 다짐했던 수진이 혜나의 엄마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다.

수진은 검정 쓰레기봉지에 쌓여 버려진 혜나를 통해 자신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만난 것이다. 존 브래드쇼(John Bradshaw)에 따르면 모든 인간 안에는 창조적이고, 유희적이며, 호기심이 많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내면아이’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유년기의 ‘내면아이’가 충족 받아야할 욕구, 즉 의존적인 존재로서의 아이가 받아야 할 믿음과 사랑, 안전의 욕구가 채워지지 못할 때 이 아이는 “미해결과제(unfinished business)”를 갖는 ‘상처받은 내면아이’로 자라게 된다. 아이는 자라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 믿음이 필요하다. 자신의 가치와 주변 사람들을 믿고, 사회적 질서와 신의 섭리등을 믿으면서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기대며 안정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은 나라는 존재감을 긍정적으로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하다.

중요한 사람을 한 순간에 잃게 된다면 어떨까. 세상은 안전하고 믿을 만하다는 근본적인 믿음이 깨지고 부서지면서 세상은 안전하지 않고 이 세상 누구도 믿을 수 없으며 내 삶도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게 된다. 이렇게 ‘내면아이’가 상처를 입은 채 성장하게 되면 그 상처는 성인이 되어서도 공격적 행동, 중독적·강박적 행동, 사고의 왜곡, 공허감, 무기력같은 심리적 어려움으로 나타나게 된다.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치유’는 자기 안의 ‘내면아이’를 자각하고, 미처 해결되지 못한 ‘아이의 슬픔(미해결과제)’을 다시 경험하여 ‘애도’해 주는 것이다. 수진은 상실했던 자기의 일부를 찾으면서 어린시절의 고통과 감정을 재현해보고, 공감하며 느끼면서 재구성하여 치유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즉, 본래의 ‘내면아이’와 만나, 직접 대면함으로써 과거의 고통을 위로하고 수용하여 치유가 이루어지며 이는 유년의 좋고 행복한 경험뿐만 아니라 고통스럽고 불행한 경험 또한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 자신의 전부가 통합됨을 의미한다.

이 드라마에서 엄마는 아니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정애원(보육원) 원장인 클라라를 빼놓을 수 없다. 수진이 혜나를 데리고 도망치면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정애원이다.

클라라는 넉넉한 몸 만큼이나 있는 그대로 수진을 담아주고 안전한 환경과 수진의 내면세계에 대해 거울처럼 반영해주고 공감해주는 모성적인 돌봄을 제공해 주는 대상이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엄마가 되어줄 수는 없다. 상담자는 나름의 이유와 상황에서 힘들고 어려운 내담자들이 자신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고, 충족되지 못했던 욕구를 상담자에게 전이시킬 수 있을만큼 클라라와 같이 안전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다.상담자는 내담자가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도록 조력자로서, 내담자 스스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묻고 생각하게 하는 안내자로서 함께 해야 한다.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수진의 직업은 일반 여느 여주인공들과 달리 철새를 연구하는 조류학자이다. 사전에서 철새의 의미를 찾아보니 알을 낳아 기르는 번식지와 추운 겨울을 나는 곳이 따로 정해져 있어 철 따라 옮겨 다니는 새라고 한다.

수진에게 있어 철새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안전기지를 찾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가는 혜나의 모습을 담고 있다.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드라마 속의 인물에 자신을 투사하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는 것이 단순히 시간 때우기 행위가 될 수도 있지만, 남은 방학동안 드라마를 보면서 상담자와 내담자 역할을 해보고 주인공과 동일시를 이루기도 하면서 무의식 속에 억압되었던 기억속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만나 통찰과 치유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바란다